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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프론티어 유스] ‘비영리 분야를 희망하는 청년들에게’, 최유강 대표, 유성희 사무총장 특강

2016.01.08.

제1기 아산 프론티어 유스에 손님 두 분이 찾아오셨습니다. 드림터치포올의 최유강 대표님, 한국YWCA연합회 유성희 사무총장님이 그 주인공이었습니다. 이날 두 분께서는 비영리 분야를 꿈꾸는 단원들을 위해 따뜻한 말씀을 전해주셨는데요. 유스 단원들에게 꿈과 용기를 심어주고, 현장에서의 생생한 경험을 전해주신 두 분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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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림터치포올 최유강 대표 특강 – Why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나요?’


드림터치포올 최유강 대표님은 하버드를 졸업하고 비영리 교육기관 ‘드림터치포올’을 설립하셨습니다. 드림터치포올은 ‘교육을 통한 따뜻한 대한민국 만들기’라는 모토를 가지고 교육 봉사를 진행하는 단체입니다. 교육 소외계층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함과 동시에 봉사자 대학생들의 성장까지 도모한다는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2▲ 드림터치포올 최유강 대표님


다음, 그 다음 진로까지 고민해 보세요
“제가 진로를 얘기할 때 꼭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진로는 다음, 그 다음 진로까지 고민해야 한다는 겁니다. 만약 ‘나는 이 회사에 입사하는 게 목표야’라는 목표만 있다면 다음 스텝에서 엉킬 가능성이 있습니다. 항상 다음, 그 다음 과정을 생각해야 이 과정이 내 인생에 맞는 방향인지 알 수 있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여러분이 에세이를 써보는 걸 추천합니다. ‘이 기관이 나를 왜 뽑아야 하는가’를 주제로 에세이를 써보는 것이죠. 이때 여러분은 여러분의 미래와 과거를 어떻게 바라보고 진술해 나갈 것인지 깊은 성찰과 고민이 필요할 것입니다.”

3수생에서 하버드까지
“저는 3수 끝에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재수 과정은 쉽지 않았어요. 아버지께서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시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한동대에 입학했습니다. 이후 늦깎이 나이에 입대해 30개월 간 복무 했습니다. 군기가 가장 세기로 유명한 의장대였지만, 제 삶을 바라보는 시각을 훨씬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군대는 저의 중력장을 벗어나, 나라는 사람과 환경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재학 중에 하버드에 입학 원서를 넣었고 합격통지를 받았습니다. 합격에는 2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첫 번째는 ‘재학 중에 원서를 냈던 용기’. 두 번째는 제가 가진 역경지수(Adversity Quotient)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생에는 3가지 사람이 있다고 하는데요. 첫 번째는 Quitter, 문제가 다가오면 포기하는 사람. 둘째는 Camper, 어느 순간 인생에 한계를 느끼고 산 중턱에 캠프를 짓는 이. 셋째는 Climber, 인생을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와 같지만, 그 여정을 감당하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이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유형인가요.”

 
3▲ 강연을 경청 중인 김예진 단원(왼쪽)과 박혜진 단원

Why not change the world?
“Why에 있어서 비전이라는 단어는 생각보다 힘이 큽니다. 저를 움직인 비전의 한 문장은 공부해서 남주자. ‘Why not change the world’입니다. 어쩌면 우리 인생에 있어 여러분이 붙들어야 하는 건 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비전이 있다면 나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겠다. 그것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명확해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나중에 입사한다면, 2~3년간 정말 최선을 다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고도의 집중을 해서 한 가지 일을 해내면 이 길이 내 길인지 아닌지 명확히 보이기 때문입니다. 긴가민가하거나 어설프게 그만둘 경우 이 길이 맞는지 아닌지 더 알기가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앞으로 여러분 커리어에 있어서 이 부분을 꼭 염두에 두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산 프론티어 유스 단원을 위한 3가지 Tip!
“강연을 마무리하기 전에 ‘Why’를 찾는 간단한 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여러분이 취업, 혹은 진학하고 싶은 곳에 에세이를 써보세요. ‘왜 00기관이 당신을 뽑아야 하는가’가 주제입니다. 적어도 며칠 간의 고민이 필요할 겁니다. 둘째, 여러분이 가진 게 무엇인지 리스트해보세요. 저는 1994년 2월 21일 고등학교 졸업해서 2004년 2월 21일 대학교를 졸업하기까지 10년 동안 겪은 일들이 제 인생의 방향이 되었습니다. 아픔도 여러분의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의 중력장으로부터 한 번 벗어나 보세요. 여러분이 익숙한 곳을 벗어나 새로운 사고를 해보는 것입니다. 본인만의 Why를 꼭 찾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한국YWCA연합회 유성희 사무총장 특강 – ‘NGO에서의 경험과 청년에게 전하는 이야기’


한국YWCA연합회 유성희 사무총장님은 NGO(비정부 기구) 분야 차세대 리더 조사에서 올해까지 3년 연속 1위를 하실 만큼, 비영리 분야에서 손꼽히는 리더입니다. 한비야 국제구호 전문가, 가수 션을 넘어 NGO 분야 톱으로 꼽히시는 유성희 사무총장님께서는 20년 이상 비영리 분야에 몸담아 오며 겪었던 경험을 재미있게 전달해 주셨는데요. 청년들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 말씀해 주신 유성희 사무총장님의 강연 내용을 만나보세요.

4▲ 한국YWCA연합회 유성희 사무총장님


앵커가 꿈이던 소녀, 시민운동가가 되다

“저는 36살에 YWCA 사무총장이 되었습니다. 한국 YWCA 사상 최연소 사무총장 취임이었죠. 당시 YWCA 내부에서는 오래된 기관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젊은 기관으로 변해야 한다는 요구가 컸었어요. 그런 분위기 속에서 젊은 나이의 제가 사무총장이 되었고, 9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무총장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른 나이에 사무총장이 된다는 건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었어요. 책임자가 된다는 건 어떤 질문이 던져져도 답을 해야 하는 부담감을 안고 가는 것이에요. 처음엔 외줄을 타는 심정이었습니다. 저는 대학을 다닐 때 신문방송학을 전공했고 앵커가 꿈이었어요. 신나게 카메라 들고 뛰었고, 워낙 음악을 좋아해서 라디오 프로그램 ‘별이 빛나는 밤에’에서 작가로 일하기도 했어요. 당시 목요일 작가가 노영심이었고, 저는 금요일 담당이었답니다. 가수 이문세 씨가 저한테 준 별명이 방실이였어요.(웃음). 대학 때는 하고 싶은 거 다 하려고 동아리 활동을 정말 많이 했어요.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YWCA를 알게 됐고, 이후 시민운동과 방송 진로를 놓고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때 한 선배가 ‘역사를 알려주는 사람보다 역사를 만드는 사람이 되라’는 말을 해주었는데, 이 말에 큰 힘을 받고 졸업하자마자 YWCA에 입사하기로 하였습니다.”

 

거절당한 제안서, 제출 또 제출
 “NGO와 일반 조직의 차이점은 제안서의 힘이 크다는 것이에요. 어떤 사람이 외국의 어떤 서적이 좋다고 하면 그날 당장 번역하기도 했었어요. 피터 드러커 서적 <비영리단체에서 부딪히는 5가지 질문>을 발견하고 신나게 번역해 한국경제신문에 출간 제안을 하기도 했답니다. 저에게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가 있어요. 93년도에 대학생을 대상으로 해외연수를 포함한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한 적이 있었는데, 내부 결재 과정에서 네 번이나 거절당했어요. 전국을 수소문한 끝에 일본 연수에 필요한 항공비 등 일체경비를 무료로 지원해주겠다는 한 기독교 단체를 알게 됐고, 제안서를 다시 써서 제출했어요. 그리고 아주 크게 혼이 났죠. 혼자 일을 마음대로 하고 다니느냐는 꾸중을 들었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새로운 제안서를 써서 제출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오기였던 거 같아요.(웃음) 다행히 한 선배께서 ‘젊은 사람이 저렇게 애쓰는 데 지원해주자’고 말씀해 주신 덕분에 제안서가 통과되었습니다.”

 

사 기획하다 협찬 받은 의상 태워먹기도
“간소한 결혼문화를 알리기 위해 웨딩드레스를 협찬 받아서 대학교 축제를 열었던 때였어요. 두 번의 행사를 기획했는데, 첫 번째 준비한 행사에서 갑작스러운 화재로 협찬 받은 웨딩드레스가 전부 타버렸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다음 행사를 위해 의상학과 학생들과 3일 밤낮을 새며 웨딩드레스를 만들었어요. 하얀색 커튼처럼 온갖 물품을 이용해 드레스를 만들었고 간신히 행사를 진행했답니다. 이러한 경험은 NGO가 가질 수 있는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20대가 무언가를 해보겠다고 할 때, 어느 기업에서 마음껏 지원해 줄 수 있을까요. 20대를 생각하면 사고도 많이 내곤 했지만, 정말 귀하고 보람찬 경험이었어요. 여러분들도 NGO에서 많은 귀한 경험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NGO 활동가에게 필요한 ‘여러 개의 눈’
“민간단체 실무자는 자영업자 같아요. 문 열고 닫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거든요. 비영리단체의 프로그램은 개인이 주도하기 때문이에요. 민간단체 실무자들은 프로그램 혹은 영역을 자기가 경영한다고 생각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해요. 그렇지 않고 남의 일을 해준다고 생각하면 계속 쫓아가면서 일할 수밖에 없어요. 하나를 하더라도 내 것을 제대로 정성 있게 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해요. 오늘 이 강연을 하기 전에 다문화 청소년 캠프에 참여했어요. 캠프 참가자 중 몇 명은 정말 최빈층이라 시내 교통비마저 부족한 때도 있어요. 그런 친구들을 만나면 제가 누리는 행복이 정말 사치스럽다고 느낄 때가 있답니다. 여러분들이 인턴십을 통해 그런 것을 느끼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경험을 하고 있다고 봐요. NGO 실무자는 예민해질 필요가 있어요. 우리가 장애인이 아니므로 느끼지 못하는 부분들이 많답니다. 계속 느끼려고 노력하면 하나라도 더 보게 됩니다. 비가 올 때 ‘단순히 가뭄이 해소되겠구나’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저기가 문제가 되니까 더 안전해져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필요해요. 돌계단을 보면 ‘눈 오면 미끄러지겠네’라고 생각하는 것처럼요. NGO 활동가는 장애인의 눈, 노인의 눈, 아이의 눈처럼 여러 개의 눈을 가져야 합니다.”

 
5▲ 질문 중인 김용은 단원

 

어려움 속에서 흔들림 없이 가는 것이 NGO의 사명
 “덤벙댈 때가 많아 활동가들이 저보고 ‘허당’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요. 이런 저에게 원칙이 있다면 ‘여희’입니다. 여유가 기쁨을 잊지 않고 살겠다는 뜻이에요. 여러분도 살아가면서 기준이 될만한 각자의 원칙을 가지셨으면 좋겠어요. NGO에서 일하는 사람은 고민이 있어요. 유토피아 같은 세상에서 나뿐만 아니라 가족, 친구 모두가 함께 살고 싶다는 거죠. 저는 이 말을 좋아해요. ‘결국,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거야’. 소수가 이루는 세상보다 만인이 함께 나아가는 세상, 변화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세상이 가능하다고 믿어요. 진정한 진보는 진보보수의 이념 논쟁이 아니라 ‘route to route’, 하나를 하더라도 끝까지 간다는 정신이에요. 사람들이 어려움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내면의 힘을 갖게 하는 것이 NGO의 사명이라고 믿어요. NGO의 꿈을 가진 여러분도 이런 마음을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강연을 통해 유스 단원들은 비영리 분야의 두 리더이자 선배를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요. 드림터치포올 최유강 대표님, YWCA 유성희 사무총장님의 말씀을 잊지 않고, 선배님과의 인연도 꾸준히 이어가는 제1기 아산 프론티어 유스 단원이 되길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