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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기] 지오르다노 부르노 재단 드레스덴(Giordano Bruno Foundation Dresden)

2016.08.03.

◎ 기관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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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르다노 부루노 재단(Giordano Bruno Stiftung)은 진화론적 인본주의를 기치로 삼아 2004년에 설립된 인본주의와 계몽에 중점을 둔 학문과 학자, 철학자, 예술가들을 지원하는 재단이다. 그리고 이 재단을 중심으로 하여 드레스덴(독일 작센주의 주도시)에서 ‘계몽, 인본주의, 종교로부터의 자유’ 라는 슬로건으로 세워진 협회가 지오르다노 부르노 재단 드레스덴이다. 문화적 상대주의라는 이름으로 무시되어 온 인권에 대해서, 특히 이슬람 세계에서 종교라는 이름으로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에 대해서 잘못된 관대함을 보여온 측면을 비판하는 캠페인, 특별히 이란과 이라크에서 난민으로 독일에 와 있는 전-무슬림(현재는 무슬림이 아닌)들을 중심으로 명예 살인, 강제 혼인, 반민주주의, 아이와 여성에 대한 교리적 억압과 차별 등을 테마로 삼아, 네덜란드, 스칸디나비아 국가, 영국, 스위스 등의 전-무슬림들의 연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 외에도 사회 여러 영역에서 정치적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주 소 : Görlitzer Straße 11, 01099 Dresden
전 화 : +49 157/388 278 92
이 메 일 : falko.pietsch@googlemail.com
웹 사이트 : giordano-bruno-stiftung.de

 
◎ 주요사업

종교/이데올로기 비평
지오르다노 부르노 재단 드레스덴 은 오랫동안 서구의 여러 학계, 철학, 예술 분야에서 비판받아 온 기독교의 교리와 부정부패를 비평하고 이슬람의 억압에 대한 토론회 등을 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학문적 영역 내에서 인본주의와 계몽에 관한 내용에 중점을 두어 강연회, 캠페인도 연다. 지오르다노 부르노 재단 드레스덴은 종교와 이데올로기 비평에 공을 세운 사람에게 수여하는 “Deschner-Preis”와 진화론적 인본주의 영역에 있어서 긍정적 대안 개발에 공헌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Ethik-Preis der Giordano-Bruno-Stiftung”을 지원한다. 2007년에는 영국의 진화론자이자 종교비평가인 리차드 도킨스가 “Deschner-Preis”를 수상했다. 무신론자는 아니지만 신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진 역사의 모든 만행들을 비평하고 있으며, 진화론의 창시자인 찰스 다윈의 이론을 바탕으로 한 진화론적 인본주의를 기본 개념으로 삼고 있다. 진화론적 인본주의는 또한 사회주의자들이 가졌던 진화론적 개념, 즉 강한 종이 살아남는다는 마르크시즘 또한 부정한다. 오히려 진화론을 이데올로기가 아닌 ‘자연주의’적 관점에서 해석하여, 그것이 인본주의적 방향으로 발전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 외 매달 첫째 주 일요일 11시에 회의론자, 무신론자, 그리고 인본주의자를 초대하여 다양한 음료와 차, 음식을 편안한 분위기에서 제공하며, 무엇보다 “더 높은 권력ㆍ차별”이 없는 만남을 진행한다.

 
◎ 방문 목적

지오다노 부르노 재단에서 각각 동독, 서독 출신의 팔코씨와 니콜라이씨를 만나 통일 이후 20여 년의 시간 동안 있었던 갈등과 통합의 과정을 알아본다.
 
① 동서독 통일 당시에 갈등을 해소하고 사회 통합을 위해 어떤 노력들이 있었는지, 동서독 간 통합의 문제가 시간이 지나면서 해결된 부분도 있겠지만, 실제적인 노력은 어떠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② 분단 당시 현재 남한의 탈북자처럼 동독에서 서독으로 넘어가는 사람들이 많았을텐데 서독에서는 그들을 어떻게 대우했었는지, 정부에서는 어떤 정책이 있었는지 배우고자 한다.
③ 지오다노 부르노 재단과 SARAM과 같은 독일 내 NGO를 통해 우리나라 탈북민 또는 북한인권 관련 단체의 활동과 관련하여 어떤 시사점이 있을지 알아보고자 한다.

 
◎ 인터뷰

Q. 지오다노 브루노 재단에 대해 좀 더 설명해주신다면?
A. 재단은 6,000명 가량의 지지자ㆍ회원이 있는데 그 가운데는 60명 이상의 자문위원들이 있다. 그들은 교수, 학자, 예술가들이고 재단 내에서 정치적, 사회적 Think-Tank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그룹은 60개 이상의 그룹들을 연결ㆍ조직ㆍ소통하는 일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있다. 현재로서는 젊은이들이 주 활동대상이다. 처음에는 교수나 대학생들이 많이 가입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인본주의적인 영역 내에서 모든 인류ㆍ사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Q. 동서독 통일 이후 시간이 꽤 흘렀는데, 그 당시에 사회 통합을 위해 어떤 노력들이 있었는지?
A. 당연히 동서독의 체계 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갈등이 있었다. 서독의 사람들은 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 안에서 살아오지 못한 동독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였다. 많은 동독 사람들은 통일 이후에 서독 사람들을 거만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서독 사람들이 동독 사람들을 마치 작은 동생처럼 순진하고, 단순하고, 뭐든 잘 믿는 사람들로 여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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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독일사람들은 한국의 남북 분단 현실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가?
A. 독일에선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한국의 자세한 상황을 알고 있다. 북한은 그저 가난한 나라로만 알려져 있고, 정치체제에 관해서는 이해가 적다. 하지만 정치기관이나 강연을 통해 남북분단의 현실을 알리면 독일사람들은 자신들의 과거를 기억하며 동정심을 갖는다.

 

Q. 남한의 탈북청소년들은 다른 교육 체제와 정서적 차이 때문에 많이 힘들어 하고 있다. 동서독 간 통합의 문제가 시간의 흐름 내에서 해결된 부분도 있겠지만, 실제적인 노력은 어떠했는가?
A. 통일 이후에 가장 먼저 양쪽 모두에게 무엇이 공통된 것인지를 발견하고자 했다. 분단이라는 피할 수 없는 일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양쪽 모두에게 속해 있는 것, 곧 언어는 은유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것은 언제나 함께 공유했던 것이고, 전통의 근원이기도 하다. 그리고 한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같은 형제 자매인 것을 의미한다. 또한 40년 분단 기간 중 30년 동안은 실제 장벽이 존재했고 혈육이 떨어져 살았다. 그렇지만 편지와 통화와 같은 방법으로 양쪽이 서로 교류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장벽이 무너진 후 반대편에 있었던 친척ㆍ가족과 바로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정책적인 면에서는 통일 이후 서독에서 매우 많은 재정적인 지원이 동독으로 흘러갔다. 길과 건물을 짓고 개발하는 일에 지속적인 지원이 있었고, 그 지원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나아가 정부적인 차원에서 서독에서는 동독 주민들의 인권을 위해 일하는 기관과 단체가 많았다. 동독의 주민들을 일종의 체제의 희생자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1985년부터 동독에서는 자체적으로 인권 향상을 위한 기관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정치범으로 수감되어 있는 사람들을 위한 일을 했다. 뿐만 아니라 동독의 민주주의를 위한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1985 – 1998년 사이에는 12 – 15개 가량의 비밀조직이 생겼다. 그리고 천천히 구 동독 정부의 체제에 대항하여 공적 영역에서 운동을 준비했는데, 두 개의 큰 저항운동이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하나는 사람들이 거리로 나가 “우리는 국민이다(Wir sind das Volk: 여기서 das는 정관사로 일반적 의미의 ‘국민’을 뜻한다)”라는 표제를 가지고 오십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라이프치히, 드레스덴 등에서 운동을 벌였다. 이 표제가 의미하는 것은 ‘우리가 결정하고 싶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원한다’라는 것으로 그것이 ‘우리의 권리이다’라는 것이다. 두번째 저항운동의 표제는 ‘우리는 한 국민이다.(Wir sind ein Volk: 여기서 ein은 부정관사로 ‘한 국민’임을 뜻한다)’이다. 비록 단어 하나를 바꾼 것이지만 그 의미의 변화는 매우 크다. 두번째 슬로건은 민주주의를 넘어서 통일을 원한다는 뜻을 함축한다. 이 한 단어의 변화로 전체 국민의 운동으로 변화할 수 있었다.
 
1990년(통일 당시)에 동독 국민들은 이에 대해 매우 만족했으며, 특별히 자유를 가졌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다른 나라로 여행할 수 있고, 반대편에 있던 가족들을 만날 수 있고, 비민주적인 정당의 통치가 끝난 것을 의미했다. 그들의 기대는 매우 컸다. 구 동독의 주민들은 서독의 주민들과 같은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 동독 주민들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었던 서독의 TV방송과 라디오 방송을 통해 반대편 사람들의 삶을 알 수 있었다. 동독에는 없었던 다양한 자동차, 생활용품, 음식(예를 들어 바나나와 같은 것)들이 이제 우리에게도 허락되었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통일 후 문제는 큰 실망감이었다. 그들은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고, 일을 할 수 있고, 여행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은 dürfen(독일 문법에서 ‘할 수 있다’라는 의미이지만 능력이 아니라 허락을 의미한다)을 의미하는 것이지 können(‘할 수 있다’라는 능력을 의미한다)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즉 법적으로는 여행, 공부, 일을 할 수 있지만 그것이 바로 동독 사람들이 그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돈이 있어야 했다. 과거에는 정치적인 자유가 없었지만, 통일 이후의 새로운 체제 안에서는 경제적인 자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는 통일 후 높은 실업률, 그리고 동독 시절에 받은 여러 교육과 기술들이 서독 지역에서는 인정받지 못하는 것, 지식인들을 동등하게 대우해주지 않는 것 등으로 동독 주민들의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큰 문제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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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통일 이후 동독에서 서독으로 넘어가는 사람들이 많았을텐데, 서독에서는 그들을 어떻게 대우했으며, 정부에서는 어떤 정책이 있었는가?
A. 장벽이 무너진 직후, 정말 많은 사람들이 서독 지역으로 이동했지만, 매우 다른 교육을 받아온 양측 사이에 큰 차이가 있었다. 동독에서 온 사람들은 당연히 값싼 노동력으로 여겼고, 서독의 상태가 아주 나쁜 중고 자동차가 동독에서 비싸게 팔리기도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동독 사람들은 서독 사람의 사회 안으로 들어가고자 애썼지만, 교육격차의 문제가 컸다. 즉 동독에서 받은 교육을 서독에서 자동으로 인정받을 수 없었다. 그 때문에 다시 적합한 교육을 받아야 했고, 그 부분에 있어서 많은 지원이 있었다.

 

Q. 통일 이전에는 동독을 탈출하는 것이 어떠했었는가?
A. 1990년 이전에도 많은 동독 주민들이 자신의 나라를 떠났다. 그것을 위한 3가지 가능성이 있었는데, 하나는 정식으로 외국여행을 신청해서 허가를 받는 것이다. 당시 이것을 위한 관청이 있었다. 그곳의 허락에 따라 여행이 가능 또는 불가능했다. 두번째는 예술작품이나 문학으로 정부에 반대하는 활동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정부의 처벌로서 동독에서 추방한다. 세번째는 도망치는 것이다. 1949-1961년 사이에 이런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 이유로 장벽이 세워진 것이었다. 그 이후에는 탈출이 어려웠다. 물론 많은 이들이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장벽 아래로 터널을 뚫기도 하고, 자체적으로 비행기를 만들기도 하고, 배를 만들어 서독으로 넘어가기도 했다. 동서독은 편지나 전화로 연락이 가능했기에 미리 계획을 해서 동에서 서로 넘어온 이들을 도울 수 있었다. 서독은 동독 정부에 수감되어 있던 정치범들은 보석금을 주고 사오는 정책을 가지고 있었다. 그 보석금은 매우 큰 것이었다.

 

Q. 인권단체 ‘SARAM’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나?
A. ‘SARAM’은 14명의 구성원으로, 13명이 (명예)회원으로서 따로 직업이 있는 자원자들이다. 그리고 나머지 한 사람이 본인(니콜라이)인데, 지오다노 브루노 재단으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아 북한의 인권을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정기 간행물을 발행하고 있다. 그리고 여러 인권을 위한 일을 하고 있으며, 여러 전문가들과 협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재정적인 부분은 앞으로도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 4기 2조가 만난 기관 담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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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olai A. Sprekels(Project Manager) / Falko Pietsch(Communication Manager)
니콜라이 슈프레켈스는 동독 출신으로 지오다노 부르노 재단(GBS)에서 여러 정치적인 주제들을 가지고 협력자들을 개발ㆍ동원하고 있다. 우연히 개인적인 만남을 통해 북한상황을 듣게 되었는데 유럽은 북한 인권에 대한 지식ㆍ개입이 거의 없어 지오다노 브루노 재단에서 인권을 위해 일하면서 모임 ‘SARAM’을 만들게 되었고, 지오다노 부르노 재단의 도움으로 북한인권을 위한 일을 하고 있다. 현재 독일 전체의 가장 큰 관심은 난민이다. 정부차원에서도 정책적으로 난민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지만 2-3년 후에는 북한인권이 공공 영역에서 다루어질 것이기에 정기간행물을 발행하여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준비하고 있다. 팔코 피치는 지오다노 부르노 재단에서 커뮤니케이션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데 재단은 독일 전역에 60여 개의 그룹으로 구성되어 다른 협력자들을 함께 조직ㆍ편성 하고 있다.

 
◎ 시사점

한반도와 동서독의 상황 비교
한국과 독일의 상황을 비교하는 것은 어렵지만 나름의 시사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반도의 상황은 동서독과 많이 비슷하지만 독일에 비해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서독이 가진 차이는 남북한이 가진 차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지 않으며, 남북한은 통일을 위해서 훨씬 많은 비용이 필요할 것이라는 점이다. 정부차원에서 서독에서는 동독 주민들의 인권을 위해 일하는 기관과 단체가 많았고, 서독 주민들은 동독의 주민들을 독재체제의 희생자로 생각했다는 점도 통일에 있어서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된다. 독일 국민들은 양쪽 모두의 역사적 상황에 대해서 서로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다. 현재의 독일 정부도 구동독 시기의 사람들을 피해자로 여기고 있다. 예를 들어 비밀정부의 통치체제 아래서 여러 모양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찾아서 연금을 주고 그 문제들을 해결하려 한다. 왜 당시 상황이 안 좋았으며, 왜 차별이 있는지와 같은 문제들을 계속 질문하고 지켜본다. 이러한 노력은 결국 현재의 독일 국민 전체를 위한 것이다.

 

허락을 의미하는 dürfen과 능력을 의미하는 können의 차이
우리가 연구하는 탈북 청년ㆍ청소년들이 겪고 있는 가장 큰 어려움은 한국에서의 차별과 편견, 그리고 기회는 주어졌으나 실제 그것을 제대로 활용할만한 여건이 갖춰져 있지 못하다는 것인데, 동서독 역시 그러한 과정을 겪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발견하였다. 즉, 독일 문법에서 ‘할 수 있다’라는 의미이지만 능력이 아니라 허락을 의미한다는 dürfen과 ‘할 수 있다’라는 능력을 의미하는 können의 차이이다. 과거에는 정치적인 자유가 없었지만, 통일 이후의 새로운 체제 안에서는 경제적인 자유가 없었던 것처럼 남한에 온 탈북 청년ㆍ청소년들은 자유가 주어졌으므로 북한에 없었던 허락을 의미하는 ‘할 수 있다’의 삶을 남한에서 살 수 있게 되었으나, 경제적인 능력 즉, 진정한 ‘능력’으로서의 ‘할 수 있다’를 누리고 있진 못하다. 통일 후 높은 실업률, 그리고 동독 시절에 받은 여러 교육과 기술들이 서독 지역에서는 인정받지 못하는 것, 지식인들을 동등하게 대우해주지 않는 것 등이 동독 주민들의 자신감ㆍ자존감을 떨어뜨리는 큰 문제를 낳았다는 것들이 남한에 온 탈북 청년ㆍ청소년들이 겪고 있는 실상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남한에 와 있는 탈북민들의 가장 크고 심각한 문제
우리에게 궁금한 것이 없는지 동독출신 팔코씨에게 묻자 ‘남한에 와 있는 탈북민들이 가지는 가장 크고 심각한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를 질문했다. 특히 남한은 이미 영어와 같은 외래어가 많이 들어와 있는데, 의사소통에 있어서 언어적 문제가 없는지에 관해 물었다. 이에 물론 언어 차이 문제도 있지만, 탈북민 자신이 북한 출신에서 남한 시민으로서 통합되는데 자기 정체성 혼란 문제가 가장 크다고 대답했다. 남한 사람들의 시선, 편견 때문에 탈북민 스스로가 남한에서 환대받는 존재가 되지 못한다는 생각에 안정적인 정착을 이루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한 예로 이력서를 넣을 때 탈북자라고 하는 것보다 조선족이라고 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한다. 차별이 그만큼 심한 것이다. 지오다노 부르노 재단의 두 직원을 통해 우리가 통일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고, 탈북민의 정착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깊이 있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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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기 2조 이사회

프로젝트 주제
탈북 청소년소통을 위한 공간 구축

 

프로젝트 배경
탈북청소년은 남한 사회에서 차별과 편견, 외로움과 문화적 차이에 따른 심리·사회적 부적응 문제 등으로 많은 어려움에 처해 있다. 정부에서 정착 지원, 교육기회 제공 등 다양한 지원사업을 실시하고 있으나 정부 지원만으로는 이들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 인식을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일반 국민들의 인식을 개선하고, 탈북청소년들이 심리·사회적 안정과 한국 사회에서의 정착을 위해서는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며 용기를 주고 받는 당사자들간의 소통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탈북청소년 당사자가 주체가 되어 선배 탈북청년의 경험담과 조언, 후배 탈북청소년의 궁금증을 자유롭게 나눌 수 있는 양방향 온라인 소통공간인 ‘공감’을 구축하여 사람책처럼 선배 탈북청년들의 스토리들을 홈페이지에 아카이브화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나우(NAUH, 남북한청년이 함께 활동하는 북한인권단체) 및 국민통일방송과 파트너십을 맺고, 기존 홈페이지의 업데이트와 홍보, 영상 촬영 및 홈페이지의 지속 관리 등 전반적인 사항에 대하여 상호 협력하고, 팀의 프로젝트가 완료되더라도 지속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또한 프로젝트의 활성화를 위해 우리나라와 같은 분단국으로 통일을 먼저 경험한 독일(베를린)에서의 해외방문연구조사를 통하여 독일이 사회적으로 어떤 지원 시스템을 발전시켜왔는지를 살펴보고 이를 한국에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프로젝트 조원

윤순화(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
류승남(강남시니어플라자)
박경호(동안복지재단)
박선례(통일미디어)
김수연(한국소비자연맹)